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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군지(洪川郡誌)오류1] 잘못된 역사기술 개정해야

강대덕 박사 또 용역 맡아,.예산낭비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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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석춘 기자
기사입력 2020-12-02

홍천군지(洪川郡誌) 오류투성,... 4억 예산낭비 지적

오류 집필자 강대덕 박사 또 용역 맡아,...집필진에 가족(?) 참여, . 원고수 늘리기?

 

 

 

 

역사학자의 말과 글

 

말은 무겁고, 글은 진중해야 한다. 말은 흩어져 주워 담을 수 없고, 글은 기록으로 남아 지울 수 없다. 말 한 마디로 운명이 바뀌고, 글 한 문장으로 역사가 바뀌기도 한다. 범인도 그러할 진데, 역사를 논하고, 기록하는 사학자의 말과 글은 천근의 무게와도 같다.


지난 10월 16일 ‘홍천 수타사 대적광전의 문화재적 가치와 보존 및 활용’이란 주제로 홍천문화원에서 학술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홍천군에서 국가지정 문화재 승격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전국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서 대적광전의 역사, 불교사, 미술사, 건축사의 가치에 대한 다양한 논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경주대 오새덕 교수가 “세조의 왕후인 정희왕후의 아버지를 윤번(尹璠)이 아닌 이문화(李文和)라고 잘못 표기해 소란의 빌미를 주었다. 이날 방청객으로 참석한 강대덕 박사가 이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장내가 소란해졌고 많은 기대를 갖고 자리에 참석한 지역 향토사학자들의 아쉬움도 컸다.

 

강대덕 박사의 지적은 틀리지 않다. 비록 본 주제인 수타사대적광전과 문화재적 가치와 연관성이 적은 사안이었지만 역사학자로서 기본적인 사실 관계의 오류지적은 방청객에게 혼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지적은 불가피했다. 어쨌든 오 교수는 그게 착각에 의한 실수 건, 무지에 의한 실수 건 학자로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중해야 한다.

 

앞으로 홍천군의 역사를 논하는 자리에서는 스스로 나서지 않는 게 역사학자로서 자세이고 태도이다. 강대덕 박사도 마찬가지다. 강 박사 또한 홍천의 역사서인 “홍천군지”편찬에 집필진으로 참석했고 그가 쓴 홍천의 지명유래 등에서 상당한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역사학자들의 말과 글에 천근의 무게와 같은 책무를 다시 한 번 일깨우고 귀중한 혈세로 제작된 홍천군지가 잘못된 역사학자의 기술로 왜곡되었기에 군의 조속한 개정을 요구하며 홍천군지의 몇 가지 오류를 지적하고자 한다. 

 

 

 

 


홍천군은 1989년에 이어 27년만에 지난 2018년 4억을 투입해 『2018 홍천군지』를 발행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집필진 중 강대덕 박사는 그의 부인과 아들이 군지 편찬에 함께 참여한 사실이다. 가족이 함께 집필진에 참여하는 것은 흔치 않는 일이다. 다만 편찬된 군지내용에서 사실과 다른 역사적 오류가 있다면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홍천군지(洪川郡誌)는 홍천의 기록이며 역사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그대로 기록해 놓아 후대에 역사서가 된다. 옛날로 치면 읍지(邑誌)이다. 홍천의 역사는 대표적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홍천현읍지』, 『관동지』, 『홍천현지』, 『대동지지』, 『관동읍지』, 『화산현지』, 『홍천현 읍지』, 『홍천군읍지』, 『강원도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홍천군지(洪川郡誌)의 역사적 오류

 

1. 도덕리가 없는데 있다고 표기했다.

 

2018년 홍천군지 중권 삶과 문화편 중 제1장 인문환경 (3) 두촌면(斗村面) 39P를 보면, “장남리는 인제군과 경계를 이루는 마을이다. 건니고개 아래는 원거리·강지나뭇골·장사랑이·도덕골 마을이 있다. 남덕골은 남양 홍씨가 덕을 베풀고 살았다 하여 붙여진 마을로 『여지도서』에 도덕리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강원도 옥수수시험장이 있다.”라고 표기했다. 그러나

 

▶ 『여지도서』는 1757년(영조 33)∼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만든 공식적인 전국 읍지 모음집이다. 때문에 역사학자들이 꽤나 인용하는 지리서이다. 『여지도서』가 발행될 당시 지금의 두촌면은 말촌면으로 기록되어 있고, 말촌면에는 철은정리와 자음리만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 도덕리는 없다.

 

“末村面 哲隱亭里自官門東北間距四十五里編戶一百五男二百十二口女一百四十五口 自陰里自官門東北間距六十里編戶九十四男一百四十三口女九十口”

 

“말촌면 철은정리는 관아에서 동북쪽 45리이다. 호적으로 편성된 민가는 105호이다, 남자 212명이며, 여자 145명이다. 자음리는 관아에서 동북쪽으로 60리이다. 호적에 편성된 민가는 94호이다. 남자는 143명이며, 여자는 90명이다.”

 

말촌면이 두촌면으로 이름이 바뀌고, 도덕리가 등장한 것은 『홍천현읍지(규장각 소장, 발행 연대 미상』, 『관동지(1829년∼1831년』부터다. 

 

 

 

 

2. 서석면의 법정리는 8개인데 7개로 표기했다.

 

홍천군지 중권 삶과 문화편 중 제1장 인문환경 (5) 서석면(瑞石面) 소개에서 42P “면소재지는 풍암리다. 검산·풍암·생곡·어론·수하·군두·청량 등 7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고 표기했다. 그러나

 

▶『홍천군지』 발행 시점인 2018년도 서석면의 법정리는 8개였다. 군두리는 상군두리, 하군두리로 각각 별도의 법정리이다.

 

 

3. 여지도서에는 갈마곡리가 없는데 있는 것으로 표기했다.

 

홍천군지 중권 삶과 문화편 중 제2장 산천의 지명유래 83P에 1) 홍천읍을 보면, “ 『여지도서』에 홍천읍은 현내면(縣內面), 지역으로 진리(津里), 희망동리(希望洞里), 갈마곡리(葛麻谷里), 태학리(太學里), 검유리(檢柳里), 동막리(東幕里), 연봉리(連峰里) 등 7개 지역의 위치와 호구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 『여지도서』 홍천 방리에는 갈마곡리가 없다. 갈마곡리는 『여지도서』 이후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홍천현읍지(규장각 소장, 발행 연대 미상』에 비로소 등장하는 마을이다.

 

 

 

 


 

4. ‘진리에서 신장대리 닥바우로 가는 나루터’는 잘못된 문장이다. 닥바우는 신장대리가 아닌 갈마곡리에 있는 바위이다.

 

홍천군지 중권 삶과 문화편 제3장 읍면별 지명유래 중 117P, "(1) 진리(津里)소개를 보면, 진리-나루새 : 진리에서 신장대리의 닥바우로 가는 나루터. 부근에 군용(軍用) 비행장이 있었음. 1990년대까지 이 나루터를 중심으로 홍천의 5일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 "진리에서 신장대리의 닥바우로 가는 나루터"? 홍천 읍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다. 이 문장대로라면 홍천강 북쪽 강변에 나란히 붙어있는 진리와 신장대리를 나룻배로 이용해 왕래한다는 얘기다. 닥바우는 신장대리가 아닌 갈마곡리에 있는 바위이다. 이쯤 되면 집필자가 홍천의 역사는 물론 현재의 홍천도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든다. ‘홍천군지’라는 명칭이 부끄러워진다.

 

이 외에도 251P 성동리에 있는 대룡저수지를 상화계리에 있는 큰 저수지로 소개하는 등 자잘한 오류는 일일이 지적하기도 버겁다.

 

『홍천군지』는 군에서 인증한 홍천에 관한 공식기록이다. 군지는 동시대를 사는 홍천군민에게는 자긍심이며, 후손에게는 고향의 역사이다. 한번 잘못된 기록은 대물림처럼 이어진다. 홍천군지 상권에서 다시 한 번 오류를 살펴보자.

 

 

 

 


『2018 홍천군지』 상권에서 자연과 역사 455P 3. 누정 소개에서 1) 범파정에 기록된 내용이다.

 

범파정은 「홍천읍 갈마곡리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강원도지』에는 ”객관 앞에 있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간략히 기록하고 있다 ‘홍천현읍지’에 ”가정(嘉靖) 연간에 현감 노연(魯延)이 창건한 정자로 효종 무진에 현감 김만춘(金萬春)이 중 했고, 도광(道光) 9년 기축년에 현감 한여(韓璵)가 개건하였다“고 한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5. 위 표기된 문장에서 3개의 역사적 오류와 1개의 혼란이 발견된다.

 

▶『홍천현읍지』라는 이름을 가진 읍지는 2개다. 첫 번째 홍천현읍지는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洪川縣邑誌(발행 연대 미상』이고, 두 번째 홍천현읍지는 백원정사 필사본인 『洪川縣 邑誌』이다.

 

통상 두 읍지를 구분하기 위해서 규장각 소장, 백원정사 필사본을 함께 표기한다. 혹은 각각의 표지에 기록한대로 띄어쓰기로 구분하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건 구분을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두 읍지의 발행연대, 기록 내용이 전혀 달라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2018 홍천군지』에서 인용한 백원정사 필사본 『洪川縣 邑誌』의 범파정 기록의 원문을 살펴보자. 『洪川縣 邑誌(백원정사 필사본)』 - “泛波亭 在縣東二里 嘉靖間縣監魯延岭所創 本朝孝宗戊辰間縣監金萬春重修 道光九年己丑縣監韓璵改建“

 

▶홍천현읍지를 구분하지 못한 것은 둘째 치고 인용한 원문조차 틀렸다. 원문에는 범파정을 만든 이를 노연이 아닌 노연령으로 기록하고 있다. 홍천현감 중 노연은 없다.

 

다른 홍천읍지와 비교 분석을 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화산현지(花山縣誌/일본 오사카부립 나가노시마도서관 소장)』의 범파정 기록은 아래와 같다.

“泛波亭 ~ 중략 ~ 嘉靖間縣監魯延岭所創 本朝孝宗戊戌間縣監元萬春重修”

 

『홍천군읍지(洪川郡邑誌)』 범파정에 관한 기록은 아래와 같다.

“泛波亭 ~ 중략 ~ 嘉靖間縣監魯延岭所創 本朝孝宗戊戌間縣監元萬春重修 今廢”

 

 

 

 

▶효종의 재임기간이 1649년 ~ 1659년이니 무술년은 1658년이다. 1658년 당시의 홍천현감은 김만춘이 아닌 원만춘이다.

 

원만춘은 1658년의 2월 20일 홍천현감으로 부임해 1661년 3월 11일 퇴임했다. 내용이 틀린 『홍천현읍지(洪川縣 邑誌/백원정사 필사본)』을 인용했으니 무술년을 무진년으로, 원만춘을 김만춘으로 기록했다. 무진년은 1628년과 1688년이니 효종 재위기간에 무진년은 없었다. 기본적인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오류는 피할 수 있었다.

 

 

 


 

필자는 『홍천군지』 전체를 세세하게 살피지 않고 관심 있는 분야를 짧은 시간에 흩어본 것만으로도 이런 오류를 발견했다.

 

홍천군지를 오류투성이로 만든 집필자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앞으로 홍천군의 역사를 논하는 자리에서는 스스로 나서지 않는 게 역사학자로서 자세이고 태도이다. 그런데 강대덕 박사가 최근 홍천군 관광과에서 발주한 ‘이괄 말무덤 관광자원화를 위한 복원타당성 연구’용역의 책임 연구원를 맡았다. 그의 부인도 합류했다.

 

잘못된 역사기록과 예고되는 실수는 바로 잡아야 한다. 누군가는 지적하고, 누군가는 수정하고 또 누군가는 경계해야 한다. 아울러 시급한 것은 개정판을 내는 것이다. 홍천군의 귀중한 혈세로 잘못 제작된 역사서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일그러진 홍천을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용석춘 홍천뉴스투데이편집장

 

 

<홍천지역언론연합회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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